예수문화의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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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냇가의 나무그림은 예수문화 나무이다. 예수님 이후 오늘날의 삶 전체를 보여준다. 이 나무의 뿌리는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이다.
그 삶은 사랑이었고 그 기록이 성경이다. 이 사랑의 삶은 당시의 사회에 혁명보다 더한 질적 변화 즉 transformation을 초래했다. 이 변화는 본질적인 변화로서 생명 없는 밥상이 비둘기가 되는 변화와도 같다. 사각형 밥상이 둥근 밥상이 된다면 reformation으로서 질적으로는 같은데 형태가 변한 것이다.
죄로서 그 영이 죽은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자신의 생명을 주심으로서 질적 변화를 일으키셨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쁘게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고 그 도시와 마을은 질적으로 모든 분야가 변화되어 큰 기쁨이 있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가르침인 사랑은 질적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이 사회적으로 진리임을 입증했다. 이 사랑은 역사적으로도 입증이 되었다. 2000년이 넘도록 예수님을 배우고 실천한 세계의 모든 나라가 크게 발전 했다. 이것은 오대양 육대주에 걸쳐서 실험이 되었다.
예수문화를 이룬 개인과 가정, 국가는 사람의 존엄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사람을 위해서 부강해 지고, 사람을 위해 사회제도를 만들고, 주기 때문에 번영 하게된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시냇가에 심은 좋은 뿌리와 둥치의 나무에서 무성한 잎들과 많은 열매를 맺어야 한다.
그림에서 보는 대로 그 생명의 핵심은 제자 양육이다. 제자 양육은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고 체계적으로 배워서 사는 것, 곧 사랑으로 사는 것이다. 성경에는 수 많은 사랑의 내용이 함축 되어 있는데, 일상생활에서 사랑으로 살 수 있도록, 제자 양육에서 배운 성경 말씀을 풀어 주는 것이 사랑의 기술이다. 이렇게 사랑의 마음으로 사랑의 기술을 가지고 함께 살면 사랑의 문화가 형성되는데 이것이 곧 예수문화이다. 사랑은 예수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문화는 생명의 문화이므로 확산 될 수 밖에 없다.
어렵고 혼란된 이 세대와 세계에, 예수님의 사랑과 생명을 알려주는 것이 세계선교이다. 제자 양육이 100%되어서 그 영이 100% 소생 되었으면 그에 따른 사랑의 기술과 예수문화와 세계선교도 그렇게 될 것이고, 제자양육이 30%되어서 그 영이 30% 소생되었으면 그에 따른 것도 그러하다. 한 공동체는 그 공동체의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게 되는데 문화는 합의된 삶의 총체로서 사람 사는 모든 것이다. 먹고 마시는 것에서부터 일하고 놀고 배우고 가정을 가꾸고 나라를 흥망케 하는 삶의 모든 것이다. 문화에서 가장 강력한 요인들은 언어, 음식, 명절, 관혼상례 등 일상생활에서부터 삶의 주요 사건들이다. 이전에는 집, 옷 같은 것도 주요 요인이었으나 오늘 날은 편리 중심제가 되면서 그 주요성이 약화되었다.
이런 문화 창출의 원동력이 바로 세계관이며 그에 따른 가치관이다. 이 가치관에 따라 힘 없는 사람들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는 사랑의 문화가 형성되기도 하며, 자살 테러자가 되어 무죄한 많은 사람들을 죽이는 살인의 문화가 형성되기도 한다.
예수문화 나무, 시냇가의 나무는 예수문화의 뿌리와 줄기와 열매들이다.
예수문화의 뿌리는 예수님과 그의 삶과 가르치심이다.
예수님께서 2천년 전 사람들과 함께 사실 때 그 사회는 혁명적으로 좋아졌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기쁘게 들었으며 예수님을 위하여 잔치를 벌렸다.
예수님도 잔치를 좋아하셔서, 그 분주한 공생의 시작을 결혼잔치 집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 선물하시면서 시작하셨다. 예수님께서 하늘나라는 즐거운 잔치라고 자주 이야기 하셨다. 성경은 예수문화의 뿌리이다. 지난 2천년 동안 이 예수님을 생명으로 살아온 유럽과 북미에서도 잔치를 벌릴 좋은 변화가 많았다.
이렇게 일찍 예수문화가 형성된 유럽과 북미에서, 예수님을 닮아 가는 사회가 가장 발전하는 것을 실증해 주었다. 사람의 존엄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민주주의와 그 제도들이 그 곳에서 나왔다. 그 뿌리가 성경이다. 이는 모든 좋은 것은 성경에서 나왔다는 말을 실증해 주었고 오늘날 세계는 예수문화의 열매들로 온갖 혜택을 입고 있다.
이 열매는 예수문화 뿌리에서 생명이 나와서, 열매 맺어 확산되는 제자 양육에서 시작된다. 제자양육은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고 체계적으로 배워서 사는 것인데,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과 나와 너와 자연을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자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며 또 사랑하는 대상자가 잘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이 제자양육은 사랑의 기술로 가지가 번지고 예수문화로 꽃을 피우고 세계선교로 열매를 맺는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 때문에 혼인집에서 기뻐하시듯이 기뻐하시고 나와 너와 자연은 아침 이슬에 수줍은 듯이 그러나 감격하고 왕성하며 풍성해진다.
예수문화가 왜 필요한가?
현대인은 인류 문화사 이래 최대의 급변기인 21세기의 산업, 정보사회에 살고 있다. 이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은 영적, 정신적 기반이 약한 현대의 인간성으로는 해결 능력이 취약하여 개인과 가정, 사회 지구촌 전반에서 분열이 심화, 확산되고 있다. 이 분열 현상은 후기 현대주의의 증상으로서 개인의 전인적 질환과 파괴를 일으키면서 그 범위가 확대됨에 따라 해결난이 영역이 늘어나고 있다.
그 예로 가정의 무산, 청소년들의 좌절과 비행, 직업인들의 기계화와 무한경쟁 구조 속에서 발병하는 전인적인 질병, 생태계의 위기 등 무수하다.
이제야 말로 하나님의 본질적인 가르침과 삶이셨던 사랑의 문화를 형성, 정착케 하여 대한민국이 지속적인 안정권에 들어오도록 해야 할 때이다.
“예수문화”는 기독교문화와 같은 뜻이다. 오직 예수문화는 예수님의 인성 humanity를, 기독교 문화는 예수님의 신성 divinity를 뜻 하는 차이이다.
기독의 뜻이 한문으로 그리스도인데 중국에서는 다르게 발음한다. 기독은 구속 주 그리스도에 대한 중국어로서 한국식 발음이다. 그래서 한국에서만 소통이 된다.
“예수문화” 용어를 선호 하는 이유는 언어는 대중화하기 쉽고 영향력이 있으며,
그 의미가 분명하고 실천하기에 단순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수 문화는 이 모든 조건에 부합한다. “예수” 하면 언어마다 다소의 발음 차이는 있으나,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사셨던 사랑의 사람, 전능의 삶, 십자가에 죽으심, 부활하심 등 구속적인 삶을 현대 문화권에서는 대부분 알고 있다.
예수문화가 형성될 때 건강한 개인과 가정, 사회가 형성되고, 예수문화가 확산될 때 그 사회는 번영하기 시작한다. 그 사회의 뿌리가 시냇가 즉 예수님의 사랑에 내려가기 때문에 막강한 생명력과 번식력을 가지게 된다.
한 사회의 문화는 개인이나 사회의 세계관(World View)에서 형성된다.
하나님이 계신다고 생각하는가? 안 계신다고 생각하는가?
계신다면 어떤 분인가? 좋은 분인가? 아름다운 분인가?
힘이 있는 분인가? 공의로운 분인가?
무엇보다 나와의 개인적인 관계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에 따라서 개인과 그 사회의 삶의 총체 즉 합의된 문화가 형성된다. 모든 사람은 이러한 대답에 따라 각자 행동 하기 때문이다.
사회마다 하나님에 대한 다양한 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과 타인, 사람과 자연과의 관계에서, 정치, 경제, 산업, 교육, 건강 삶 전반에 있어서 다양한 세계관을 가지게 된다.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사랑의 문화를 만들어 내고 하나님을 잔인하다고 믿는 사람들은 잔인한 문화를 만들어낸다.
하나님이 없다고 믿는 사람들은 혼돈과 공허의 문화를 만들어낸다.
예수문화는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랑을 받는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사랑의 문화 곧 생명의 문화이다.
시냇가의 나무가 이를 잘 표현하는 것 같아서 그에 따라 정리하려고 한다.
1. 제자양육
시냇가의 나무는 시편 1:1-3에서 설명 하고 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쫓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 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이 말씀에서 복 있는 사람이 하지 않는 것은 3가지인데 악인의 꾀를 좇지 않는 것과 죄인의 길에 서지 않는 것과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것이다.
복 있는 사람이 하는 것은 2가지인데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 하는 것과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자 양육은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고 체계적으로 배워서 순종 즉 사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사랑하는 것인데 사랑은 함께 하는 것이므로 공동체 가 형성 된다. 이 공동체는 작게는 가정에서부터 이웃과 지역사회, 점점 커지면서 한 나라와 국제 사회, 지구, 전 우주가 될 것이다.
2. 사랑의 기술
성경은 생명과 풍성한 삶을 주기 위해서 인생사의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 에 대단히 함축되어 있다. 이 성경을 정확하고 체계적으로 배워서 사는 것이 제자양육, 곧 사랑을 배우는 것인데 이 사랑을 더 구체적으로 풀어서 일상생활 에 기능을 극대화 하고 풍요롭게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사랑의 기술이다. 이 사랑의 기술에 포함되는 것들이 학문으로서는 광범위하게 치유와 정신건강이다.
상담, 임상심리들이 치유와 정신건강의 중요한 방법이다.
성경에는 치유와 정신건강, 이를 위한 상담과 임상심리들에 대한 기본적인 이론 과 실재가 다 있다. 그러나 오늘날 이러한 학문들이 다양한 가치관에 의해서 다양한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그 결과도 물론 다양하며 때로 유익보다 해를 주기도 한다.
그러므로 성경의 사랑의 기술, 치유, 정신건강과 그에 따른 상담, 임상심리는 제자 양육에서 전개시키고 발전 시켜야한다.
3. 예수문화
예수문화는 예수님 식으로 즉 예수님 마음으로 먹고 일하고 놀고 공부하며 사는
삶의 모든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과 나와 너와 자연을 사랑하는 것이다.
예수문화는 예수님의 지상 명령에 따라 예수님의 제자로서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인적으로 완전한 사람(whole person)이 전사회적으로 완전한 상태 (wholeness)로 발전 시켜 가는데 이는 있어야 할 모든 것이 제 자리에 있는 문화 이다. 따라서 순리와 조화로서 삶의 모든 영역이 통합되어 순기능하여 상호발전 하면서 생산 하게 된다.
다음 그림에서는 두 종류의 문화를 비교한다.
예수문화는 사람의 삶을 풍성하게 하며 삶의 모든 영역들은 사람들의 삶을 풍성 하게 하기 위해서 있다. 개인과 가정과 사회가 더 풍성해지기 위해서 있다.
삶의 모든 영역들이 전문화되는 이유도 사람들의 삶을 풍성하게 하는 것이 목적 이다. 이것이 예수님의 마음이기 때문에 위와 같은 예수 문화의 그림이 된다.
현재의 문화는 예수문화와는 다르다.
현재의 문화는 사람을 풍성하게 하지 않는 것이 많다.
현재의 문화는 사탄의 문화와 혼합이 일어났기 때문에 사람의 삶을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이 많다. 혼돈하고 공허한 사람들은 돈으로, 학위로, 놀이로 풍성한 삶을 찾으려고 최선을 다하며 절망하고 분열한다. 현재의 문화를 만든 문화인들은 성경에 근거한 세계관의 부재로 스스로 만든 성공의 척도에 따라 물질, 과학, 경쟁, 죄악의 문화로 자아가 분열되고 있다.
그 고통은 크고 파괴력이 높다. 이것이 오늘날 정신질환이 급증하는 큰 이유이다. 전문분야들은 사람에게 풍성한 삶을 주는 것과는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발전하고 있는데 무엇을 위해서인가?
돈 때문에? 명예 때문에? 안정이나 향락 때문에? 영의 혼란 때문에?
우리는 각자 자신에게 질문을 하고 정확한 답을 얻어야한다.
죽음의 문화에서 살아나고 사랑의 문화로, 변화의 주도자가 되어야하기 때문이다
정말 현재의 문화를 예수문화로, 사랑의 문화로, 생명의 문화로 바꿀수가 있을까?
하나님의 자녀들이 함께 주 성령님의 가르치심을 따라서 순종하면 할 수 있다.
역사의 진로를 바꿀 수 있다. 바꾸어야만 한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믿고 순종함으 로 1세기 이방세계를 바꾸었다면 21세기의 제자들도 현대의 죽음의 문화를 사랑 과 생명의 예수문화로 바꿀 수 있다.
예수님의 소원이다. 불변하시는 예수님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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