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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 서

Forgive

    

너희가 무슨 일에든지 누구를

용서하면 나도 그리하고

내가 만일 용서한 일이 있으면

용서한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니

  

이는 우리로 사탄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그 계책을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 고린도후서 2:10,11

    

If you forgive anyone,

I also forgive him.

And what I have forgiven--

if there was anything to forgive--

I have forgiven in the sight of

Christ for your sake,

    

in order that Satan might not

outwit us.

For we are not unaware of

his schemes. 2 Corinthians 2:10,11

    

                                             ♪ 감사와 사랑으로 오늘 외우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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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는 정말 중요합니다

요즈음은 치유라는 말이 유행 같습니다

아픈 사람이 너무 많다는 뜻이겠지요.

왜 이렇게 아픈 사람들이 많이 생겼습니까?

    

다른 사람이 내게 억울하게

나의 소중한 것에 손상을 주고

빼앗아 갔기 때문입니다

    

이 상처를 올케 완전히 해결하지 않으면

일생 환자가 되거나 죽습니다

 

아담과 해와가 마귀에게 넘겨준 이 세상은

정의롭지도 않고 평화롭지도 없습니다

 

오직 정의와 평화의 주 하나님

예수님께서 오셔서

그의 죽으심으로 정의를 회복하시고

부활하심으로 평화를 완성 하셨습니다

    

오늘날 정의와 평화라는 단어를 원수

마귀가 훔쳐가서 많은 사람들을 속입니다

 

용서는 죄지은 자가 올다는 것도 아니고

같이 일하라 살아라는 뜻도 아닙니다

    

용서는 예수님께서 사람에게

하신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죄를 지었음을

인정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은 그의 영의 성장 수준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아십니다

죄의 값이 무서움을 아십니다

그러므로 그 죄인을 불쌍히 보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 대소의 차이는 있으나

다 당하듯이 저도 크게 당했을 때입니다

용서의 과정 마지막에 왔을 때,

먹고 살기 위해서 하나님과 자신의 영혼을

파는 것을 보며 대단히 불쌍해졌습니다

이 마음은 물론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과정에서 제가 죄를 짓지 않토록

감히 표현 한다면 쩔쩔 매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의 죄의 값인 원한과 아픔과 악의와 두려움과

수치를 내가 받아 드리지 않토록요

    

내게 난 억울한 상처와 손해는 정의의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더욱 좋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삽니다

    

이 용서를 하고 깨끗이 그 사람과 그 사건을

마음으로 정리하지 않으면

나의 일생을 무산시킬 원수 마귀가 대기합니다

바울 사도 말씀이 그 궤계를 우리가 안다고

하신 이유입니다

원수가 우리에게 침임 할 길을 놓거나

약한 부분을 방치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중심으로 용서 하라고

하신 말씀은 내 마음을 주 예수님의 마음으로

영원히 정리 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성장하게 하시는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모든 자유와 복을 즐기는 것입니다

    

긍휼과 지혜의 하나님!

영원히 감사와 노래로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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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는 사도 바울께서 고린도교회에 보낸

두 번째 편지입니다. 편지는 가장 친밀하고 개인적입니다.

    

2천년 전 그리스의 고린도 시는

오늘날 뉴욕 시를 연상 시킵니다.

고린도 해안 도시에는 무역과 상업으로 부와 사치 뿐아니라

비너스 신전까지 있어서 도덕적, 성적 퇴폐는 극심 했습니다.

인문주의 발상지,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저항으로

사람 중심인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깊은

고린도 시와 아가야 그리스에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작은 빛들이 비추었습니다.

주 예수님의 집 교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사회의 하류층이었습니다.

    

시기 질투의 마귀는 바울 사도의 인격과 하나님께서 주신

사도의 권위를 흔들어서 하나님의 집 교회들을

무산시키려 했습니다.

또 극히 가난한 예루살렘 교회에 보낼

약속한 사랑의 후원금도

지연시키고 말 많케 했습니다.

    

예수님의 생명의 복음이

우리에게 전해지기까지의 과정입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의 발이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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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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